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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마을

가야금-논두렁 길

출근 버스에서는 50여분 남짓 걸리는 시간동안 진양조로 시작되는 가야금 산조를 주로 듣는다.

봄의 아지랑이 같은 느낌의 선율, 흐느적 거리듯 힘차게 내딛는 장단이 가슴을 일깨운다.

나지막한 소리와 함께 유연하게 연결되는 굴곡 있는 장단은 마치 일정한 곡선의 모습을 가진 들꽃 가득한 논둑을 걷는 느낌으로 다가오고 5월 모내기철에 맨 발로 논둑을 걸었던 어릴 적 일들을 끄집어낸다.

땅을 딛는 발바닥이 차가움을 느끼지만 상쾌하고 시원해서 좋았던 기억. 적당하게 좁고 자칫하면 넘어지기 십상인 약간은 볼록한 모양의 논길, 마치 먼 산의 능선을 보듯 보기 편안하게 구부러진 논길을 걷는 모습이 가야금 산조의 진양조 가락과 교차 되며 현실과 지난 시간의 기억이 번갈아 존재하듯 시공간을 확보한다.

오동나무 위에서 현의 미세한 떨림은 귀를 쫑긋하게 만들고 깊이 있는 농현은 오동나무에 옥구슬 구르듯 빗살무늬 토기의 곡선과 같은 둥그런 소리로 변한다. 늦 가을 고개숙인 나락 가득한 들녘에 부는 바람 소리처럼 깊고 굵직하게 들려온다.

스치는 창가로 미나리 꽝으로 변한 작은 논이 보이고 산조 가락은 중중모리를 마치고 자진모리로 넘어가고 있다. 휘모리를 듣기 전에 이어폰을 빼고 MP3의 전원을 꼈다.

눈 앞에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나를 기다리고 그 곳으로 걸어간다. 느릿한 발걸음이다.

글원문 http://www.sky473.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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