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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마을

음악은 모든 것을 완성한다.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논어 제八편 태백(泰伯)에 있는 글이다. 국악을 들을 때마다 사색한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늘 맴도는 화두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유효한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 시간의 양 끝에서 음악을 바라본다. 국악일람칠년. 더보기
유현을 만나다 술대, 유현에 머물고자 4괘법을 익혔다. 술대에 스친 소리, 정제되지 않은 어설픔에도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다. 더보기
그 소리는 악보에도 없다 악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리를 내는 것인양 좋다. 그러다가 아쟁을 옮겨놓고 그 앞에 조용히 앉아 악공처럼 흉내내며, 활대를 몇번 밀고 당긴다. 그 소리는 악보에도 없다. 고요함을 한껏 채우는 소리를 내다가 멈쳤다.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그 소리는 흔한 소리가 아니다. 尋鵠 더보기
아쟁, 더 가까이.... 허전한 시간을 채우고 무료함을 달래려 활을 잡았다. 일현 시위에 화살이 메겨지는 그런 활이 아니라 누운 팔현 위를 오가며 소리를 만드는 활대를 가볍게 들었다. 늘상 그러하듯 초보의 꿈은 먼 곳에 있고 현실은 가깝다. 간혹 밀고 당기는 시간에서 제소리가 나다가도 잡다한 겹소리를 자주 낸다. 겹소리. 아주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소리이다. 그래도 활을 잡으니 좋다. 더보기
아쟁, 활대는 시간이다 활대는 길게 쓰고 장단은 활의 빠르기를 이용하여 맞춘다. 현위에서 오고 가는 활대의 소리는 계절이며, 시간이다. 활대는 시간을 다스리고, 씨줄과 날줄이 소리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그 사이를 지나간다. 더보기
마두금은 몽골이다 마두금과 흐미는 몽골의 대표적인 악기와 음악이다. 흐미는 소리를 내는 방식이 아주 톡특하며, 다양한 음색을 보여준다. 몽골음악은 몽골인의 삶의 환경과 생활방식을 알아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악기는 지구촌 인류의 문화 교류에 의해 원리와 구조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악기를 통해 그들의 생각과 소리를 생성하는 과정과 결과물은 아주 다르다. 그것은 그들의 삶의 모습이 투영된 모습이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며 만들어낸 인류문화의 특징이라 생각된다. 높은 하늘과 넓은 구릉의 초원이 가득한 곳, 공간에 존재하는 것은 사람과 가축, 그리고 바람이 있다. 유목민 생활은 확정된 곳도 경계도 없으며, 이동하며 멈추는 곳이 그들의 터전이다. 외롭고 고닯다. 먼 곳에 이르기까지 소리를 내기도 하고 속삭이기도 하며 그들.. 더보기
아쟁, 밀고 당기다 밀당, 밀고 당겨야 한다. 그래야 친숙하고 익숙해진다. 고운 소리를 내려 밀고 당기기를 제법 오래했다. 그럼에도 소리는 시끄럽고 거칠기만 하다. 밀고 당기는 시간이 긴장과 이완의 반복으로 이어진다. 모든게 그러하다. 들숨과 날숨은 늘 일정해야 하고 현과 활대의 마찰력 또한 공학적으로 똑 같은 눌림이어야 한다. 숙련된 기능이 요구된다. 그런 연후에 소리에 생기를 넣고 색상을 입혀야 한다. 소리가 곱고 거침은 느낌이다. 그것을 얻는 길은 반복 연습 외에는 없다는 것도 잘 안다. 중청에서만 놀았다. 밀고 당기며 왼손 농현을 함께하니 어깨가 경직된 것 처럼 무거웠다. 길이 멀다. 그럼에도 간혹 아주 맘에 드는 소리를 듣는다. 아쟁, 밀당은 이어지고 풀벌레 소리가 뒤섞여 가을을 노닌다. 더보기
아쟁, 가까워질수록 묘한 감정이 흐른다 아쟁의 계면조(界面調), 참 애닳고 슬프다. 아쟁을 배우기 전에는 그 소리가 편하지 않았다. 특히 중청의 ‘라’음을 꺽으면서 내는 애잔한 소리는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으로 하여금 심란하게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심란하다는 의미는 뭔가를 깊숙하게 골몰하게 만든다는 의미이다. 멍때리듯 편안하게 즐길 수 없음이 힘들다는 것이다. 아무튼 아쟁의 그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음에 대한 감정은 사실 글로서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는다. 그 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면음이다. 이번에 아쟁을 공부하면서 그 소리를 보았다. 역시 감정적으로는 복잡성을 불러온다. 아쟁은 찰현악기 특유의 애잔한 감정을 풍성하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그런 소리를 듣는.. 더보기
멈춤 그리고 노닐다, 거문고 거문고, 오른손으로 술대로 현을 뜯고 치고, 왼손으로 괘에 올려진 현을 누르고 밀면서 사선으로 농현을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악기중 하나이다. 거문고. 소리가 진중하다. 술대가 한번 오르내리면 모든 사물이 정지하고 괘에서 노는 현성은 모든이를 움직이게 한다. 더보기
고요함, 가야금 태풍산바가 오는날, 무료함을 달래겸 해서 모처럼 12현금을 내놓고 뜯다가 상청의 황현이 끊겼다. 순간, 소리가 머춤고 바람도 멈추고 사물이 그대로 섰다. 현을 잇자 모든 사물이 움직인다. 먼 소리가 들려온다. 더보기
산조아쟁을 만나다 아쟁, 찰현 악기이다. 활대의 활밥과 명주실로 만든 현의 마찰에 의해 생기는 소리를 이용한 악기이며, 정악과 산조용으로 구분된다. 아쟁은 현악기 중에서는 가장 좁은 음역을 지닌 저음악기로 정악용은 개나리나무의 껍질을 벗겨 송진을 칠한 활로 힘차게 줄을 문질러 소리내고, 산조 아쟁은 활대에 걸린 말총(요즘에는 합사)에 압축송진을 묻혀 소리를 낸다. 그것은 마찰력을 최대한 얻기 위한 방편이다. 어제, 처음으로 8현 산조아쟁으로 그 소리를 냈다. 앞으로 밀고 몸으로 당기면서 일정한 힘에 활밥과 현이 접촉되는 면이 고르게 하여 거친 소리부터 고운 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리들을 불러냈다. 산조아쟁 8현중 하청 3현은 ‘레솔라’이며, 가운데 3현도 ‘레솔라’ 그리고 상청 2현은 ‘레솔’이다. 세 개의 좁은 음역.. 더보기
멈춤 그리고 움직임 태풍산바가 오는날, 무료함을 달랠겸 해서 모처럼 12현금을 내놓고 뜯다가 상청의 황현이 끊겼다. 순간, 소리가 끊기고 바람도 멈추고 사물이 그대로 섰다. 현을 잇자 모든 사물이 움직인다. 먼 소리가 들려온다. 더보기
익숙함은 고루하다 익숙함은 고루하다. 아침에 마눌님께 비가 오나? 했드만 ‘멈췄다’라고 한다. 귀차니즘으로 우산을 들지 않고 출근...이런... 몇 방울씩...비가 아니라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것이라 믿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속았다. 쬐금 맞은 비는 깊은 곳에 잠들던 감정을 건드린다. 단비도 가을비도 아닌 생뚱 맞은 비. 고갈된 감정에 단비되어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좋은 느낌. 그게 참 좋았다. 강마을. 낮게 깔린 가야금, 12현이 아닌 18현 창작가야금이다. 대금 소리와 서로 교유하면서 스치는 맛이 좋다. 그림은 아련하다. 어떤 기억을 되살리고 추억을 음미하며 즐기게 한다. 강가에서 저녁 노을을 마주하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느낌. 설레임과 기쁨이 공존하는 분위기가 양어깨의 미동을 유발한다. 소리가 맑고 느낌이 경쾌.. 더보기
불혹_不惑 고운 나뭇결 위에 길이 났다. 길은 늘 한결 같은 삶의 흔적이며, 진정성과 올바른 방향성을 유지해야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다. 그런 손때 묻은 악기를 바라만 봐도 여유로움이 생긴다. 평온함이 가득하다. 더보기
중광지곡(重光之曲) 중광지곡(重光之曲)의 상령산(上靈山)을 처음으로 익혔다. 유초신지곡(柳初新之曲)과는 아주 다른 분위기였다. 먼저 중광지곡을 연주하려면 조율을 해야 하는데 안족을 이동하여 태(太)를 황(黃)으로 내려 조율한다. 그렇게 하면 같은 두 개 음의 황(黃)이 있게 된다. 그래서 5현의 원래 황과 구분하기 위해 6현의 황이라는 의미로 육황(六黃)이라고 부른다. 태를 연주할 때는 육황을 눌러서 음을 맞추고, 남(南)은 한음 올려 안족의 위치를 이동하여 무(無)로 조정한다. 육황(六黃). 굳이 같은 음을 두 개로 만들고 소리는 내는 이유는 뭘까? 변화, 기교적인 측면은 아직 모르겠으나 익숙한 것에서 작은 변화를 주어 새로움을 얻는 방식에서 또 다른 멋을 얻으려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정악은 간결하면서 대쪽 같이 반.. 더보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흩은가락, 산조를 일컬는 말이다. 부산거문고악회의 이번 공연은 매우 특이하게 진행되었다. 거문고 산조의 양대 유파인 신쾌동과 한갑득류의 짧은 산조를 장단별로 번갈아 가면서 청중들로 하여금 비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두 개 유파의 산조를 생으로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시간, 파격적이다. 쉽게 볼 수 있는 기회는 아니었다. 단지 쉽게 접할 수 없는 공연에 비해 산조를 즐기는 당시의 감정에 따라 같은 장단이라도 날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산조 특성상 두 개 유파의 산조를 동시에 마음껏 즐기기에는 듣는이의 내공이 부족함에 아쉬울 뿐이다. 가마골 소극장에서 진행된 거문고 흩은가락은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사람의 속내를 속삭이듯 표현하고, 때로는 봇물터지듯 감정을 쏟아내 심금을 울린다. 편안하지만 너무 진한 감정을.. 더보기
정간보, 황태중임남을 중얼거리다. '황태중임남'을 중얼거리다. 정간보(井間譜)는 조선 세종 때에, 소리의 길이와 높이를 정확히 표시하기 위하여 만든 악보이다. ‘井’ 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 놓고 율명(律名)을 기입한 정간보(井間譜)를 익히기 시작했다. 가야금 정악을 공부하기 위해서다. 정악보를 보니네모난 그림 속에 집을 짓고 진을 치며 변화무쌍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듯 복잡하고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는 바둑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가보지 않은 길,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벌써부터 흥미롭다. 실개천의 작은 물소리처럼 은은하고 잔잔하게 여백을 즐기듯 마음을 표현하다가도 봇물 터지듯이 흘러나오는 격정적이고 폭발적인 감정을 내 던지는 산조와는 다른 느낌을 갖고 있는 정악을 배운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이다. 새롭게 가는 길, 목적지에 도달하.. 더보기
소리는 풍경이며, 흐름이다. 소리는 풍경이며, 흐름이다. 소리는 보여야 하며,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티벳음악을 들으면, 광활한 초지와 그곳에서 무리지어 움직이는 양떼들의 평화로운 풍경이 그려져야 한다. 물론 어디선가 양떼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목동이 앉아있으며, 그는 간혹 무리를 이탈하여 길 잃고 방황하는 양을 부르는 높고 청아한 목소리를 가진 여인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는 양떼지기가 아닌 광활한 초원을 더욱 그립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자연의 일부이며, 그들에게 사람과 자연의 경계는 없다. 바램을 현실로 다가오게 하려는 시도, 작은 소리를 그렇게 맞췄다. 빈 종이에 ‘소리는 풍경이며, 흐름이다.’라고 적었는데 첫 페이지를 열면 눈에 익숙한 “싸랭 ~ 칭 칭”으로 시작되는 아주 작은 산조가 이어진다. 아직은 단절된 소리로 풍경이.. 더보기
향림...香林 聲村洞, 오동나무와 뽕나무 가득한 향기 가득한 숲이다. 나무의 작은 미동은 바람을 불러 소리를 일렁이게 하고, 길고 짧은 소리들의 향연이 일어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나무 사이로 길을 걷고 있는 숲속 사람들은 속삭이듯 들리는 소리와 함께 자연과 대화를 나누듯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즐긴다. 聲村洞 공부는 그런 아련한 모습을 현실로 다가오게 할 수 있는 배움의 과정이다. 깊고 큰 산속의 고요함과 12현의 오랜 역사에 기록된 삶의 격정적인 감정이 공존하며, 흐르는 물과 같은 시간을 담고 있다. 짧고 긴 산조의 느린 장단을 돌아보는 공부를 했다. 여느 때와는 조금 다르게 쉼 없는 산길을 거닐 듯 느린 장단과 함께 시간을 질러 나갔다. 몰입. 나무 가득한 향림(香林)에서 생각을 모두 내려.. 더보기
속소리 연두색과 진한초록이 마음마저 색깔을 칠한다. 녹색이다. 봄은 살짝 일어서는 듯한 연두색의 새싹이 많아서 좋다. 눈에 보이는 그 풍경처럼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속소리, 어렵다. 뜻도 그렇거니와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것을 말하지만 앞에 붙인 글자 ‘속’은 눈에 보이는 표면이 아니라 물체의 안쪽 깊숙한 곳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즉, 속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 속소리는 뭘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을악기로 표현을 한다. 그게 뭘까? 산조를 공부하면서 속소리를 피해갈 수 는 없다. 산조를 공부하다 보면 주로 농현을 하는 왼손으로 속소리를 표현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 대개 악보에서 보면 어느 특정 음을 선명하게 내는 음표가 아니라 오른손에 의해 생성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