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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음과 산조

소리마을 2010. 5. 1. 08:54

처음 시작은 가야금 음이 조금 높은 듯 하였다. 상대적이다. 구음이 낮은 것이다. 구음이 선행하고 가야금이 따라오는 듯 서로 소리에 맞춰 주는 것 인양 조금은 비켜진 소리였다. 그러나 장단이 이어지면서 비켜선 소리는 구분하지 않을 정도로 귀에 익숙해졌다. 일치된 느낌의 선을 긋는다.

무대의 왼편에는 구음가객이 자리를 하였고 중앙에는 가야금이 그리고 오른편에는 장고가 앉았다. 구음을 하는 가객 옆에는 목을 축일 수 있는 물(차)을 준비해 두었다. 구음과 가야금에 마이크 사용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구전심수(口傳心授).

우리가 흔히 전통문화를 배우거나 전승하는 방법을 일러 그런 표현을 쓴다. 구음산조를 보니 딱 그 표현이 맞다. 구음(口音). 악기의 소리를 입으로 내는 것을 말한다. 산조를 뜯는 가야금의 음을 “지~잉, 당, 지~짓잉, 닷 찌징~” 등의 표현으로 산조를 뜯는 것이다.

오늘 공연은 스승이 구음을 하고 제자가 가야금을 뜯었다. 1시간 10여분에 걸쳐 강태홍류 산조 전바탕을 연주하였으며, 관객의 시선과 마음은 무대에 집중되는 시간이었다. ‘배운대로 전수하는 전통문화’의 교육 방식을 그대로 보는 것과 같았다. 조금 지루한 감은 있었으나 일반적인 공연에 비해 흥미로운 구조이며, 구음산조를 듣고 난 후 느낌은 ‘편안하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여유로움이 배경으로 깔리고 때로는 구음만 들려 누군가 산조를 익히려는 모습인양 착각하기도 하고 뭔가 부족한 듯 하면 현의 소리가 여백을 채우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간다. 특징이며, 장점이 될 것 같다.

바람처럼 쉽게 흐르고 흔적 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장단이 빨라짐을 잊은 채 소리에 빠져든다. 보완적이다. 구음과 산조. 한쪽이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서면 또 다른 한쪽이 그것을 채우며 시선과 귀를 쫑긋하게 만들고 관객으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뭔가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매력이 있다. 가야금 산조를 즐기기에는 구음이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구음을 즐기기에는 산조 가락이 구음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듯 하다.

구음에 몰입하다가 가야금에 귀를 쫑긋 해 보니 평소 듣던 성금련류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웬지 소리 속에 담겨진 감정이 작게 느껴진다. 아울러 가야금 연주자의 모습이 시종일관 경직된 채로 딱딱함을 유지하는 광경은 객석의 청중이 여유로움을 즐기려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정악이라면 모를까 산조를 즐기기엔 거북하다. 그런 느낌은 어쩌면 청중이 산조를 대하는 느낌의 정도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을게다.

공연의 주체는 구음이어야 한다. 가야금 소리는 구음의 본질은 배우는 입장, 그것이 본질이다. 그런 구조적 본질을 바탕에 두고 본다면 가야금 연주자와 가야금 소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그래야만 구음과 산조라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정착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객석에서의 구음과 산조 둘을 즐기려는 혼란 속에 얻은 느낌이다.

고음은 고음대로 낮은 음은 낮은 대로 단순한 듯 하면서 가볍지만 부담없이 다가오는 익숙한 가락이 있어 좋다. 구음과 가야금 산조가 얽혀 어색한 경계를 무너뜨리고 눈에 보이는 형식을 걷어내며 하나의 소리로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스승과 제자를 연결하고 나아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바램이다.

구전심수(口傳心授).

구음과 산조, 장단이 빨라질 수 록 듣는 이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다. 그 순간, 모든 잡념은 소리에 실려 현실에서 벗어난 경계의 밖으로 일탈, 생각으로부터 벗어난다. 자유로움. 보헤미안. 구음산조와 관련 시판되고 있는 음반은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구음(口音)으로 재연한, 조순애 명창의 산조 구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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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武士內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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