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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마을

공연은 책이다

대금명인 공연. 대금이 국악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어떤 모습으로 연주되고 화음을 이루는지를 짧은 시간에 모두 엿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퇴근후 여유롭지 못한 시간을 급하게 서둘러 공연장에 가는 만큼 내심 큰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저 그랬다. 소리에 매몰되는 집중도 없었고, 새로운 감흥이 생기질않았다.

아직 국악을 즐기는 귀가 일천하여 명인의 연주를 두고 이렇다 저렇다 할 입장은 아니나 공연감상 후기를 쓰는 것은 단지 공부를 위함이다.

대금과 거문고 합주인 현악영산회상은 가끔 듣는 곡이다. 그러기에 익숙하다. 익숙함에 비해 공연은 하현도드리부터 연주를 했는데 느낌이 평이했다. 단지 정악 특유의 절제된 소리를 즐길 수 있었다. 두 번째, 대금 독주인 상령산에서는 긴호흡으로 구성되는 소리를 듣는 즐거움은 평온함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소리가 길게 이어지다가 사라질 듯 하면서도 다시 이어지는 변화스런 맛이 귀를 쫑긋 세우고 마음을 모은다. 세 번째, 단소와 생황이 함께 연주한 생소병주 ‘수룡음’은 나름 화음을 즐기는 맛이 있었다. 생황은 들숨과 날숨에 따라 변화되는 소리가 조금은 신비로움이 있었고, 화음은 선을 그리며 날아가듯 우아함이 있었다.

시조창에서는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단도 거슬렸다. 대금을 즐기려니 가객에 시선이 가고 가객의 시조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듯 익숙치가 않았다. 아마 가객의 몸 상태가 아주 안 좋은 듯 평시조를 마치고 사설시조 말미에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더 이상 소리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더 높은 음을 필요로 하는 우조지름시조는 하지 못했다. 못내 아쉽다. 단소로 청성자진한잎을 듣는 시간은 푸근했다. 드러나지 않는 듯한 단아함을 느낄 수 있었으며, 어린시절, 시골 옆집에서 들려오는 듯한 나지막한 소리에 옛날 생각이 절로 난다. 그런 것 같다. 고향을 부르는 소리. 단소를 즐기는 것은 아직 익숙지 않다. 단소를 익숙하게 즐기려면 내게는 단소연주에 대해 더 많은 감상이 요구되는 것 같다.

여창가곡.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지름시조를 포기하고 들어간 가객이 다시 나왔다. 아무래도 가곡마저 건너뛰면 안될까 싶어 무리한 듯 싶다. 여창가곡은 차에서 자주 듣는 음악이라 나름 고정된 느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오늘 느낌을 표현하려니 생각나는 게 없다. 끝으로 대금독주 ‘청성자진한잎’이다. 전반적으로 소리가 낮았다. 아마도 큰 홀에 많은 청중이 함께해서 공간의 산만함이 있고 또한 마이크 사용을 안해서 드렇게 느껴 지는 듯 하다. 대금 특유의 고음을 즐길 수 없어 아쉬웠다. 아울러 소리가 높게 치솟을 때 나는 파열음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 같다. 듣는 이의 내공 부족인지 공간의 산만함인지는 잘 모르겠다. 큰 기대로 관람한 공연,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사람중심의 공연 프로그램은 장르 중심보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갑자기 대금산조가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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