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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마을

거문고, 학을 부르다

거문고, 학을 부르다



학을 부른다. 참 멋지지 않은가? 자연과 교감하며 고고함의 상징인 옛 선비가 바라보던 ‘鶴’을 푸르른 송림도 아닌 회색빛으로 둘러진 콘크리트 건물로 학을 부르다니 감동이 앞선다. 오늘은 하얀학이 아니라 검은학이 올 예정이다. 시작은 어수선했다. 객석에서 길 잃은 닭둘기 염치없이 큰 소리로 중얼중얼 하는 바람에 조용히 막을 열어야 하는 시간에 산만했다. 17명의 거문고 연주자가 일사분란하게 술대를 움직이며 소리에 방점을 찍을 때면 웅장하다는 느낌이 생긴다. 역시 거문고의 멋은 술대에서 나오는 듯 하다. 다이내믹한 술대의 움직임은 빠른 속도로 질러가는 소리를 볼 수 있고, 살며시 올렸다 내리는 술대를 보면 가까운 음을 즐길 수 있어 흥미롭다. 짧은영상은 간결한 생각과 단아함보다는 경쾌함을 느끼게 해서 나름 좋았다. 공연감상을 돕는 진행자가 나섰다. 정겨운 인사말.

꿈속에서. 정말 꿈인 듯 착각한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사실적으로 다가와 길을 잃고 헤매게 한다. 술대의 민첩한 움직임으로 시각적 착각 속에 꿈속에 빠져 들어갔다. 애잔한 느낌, 건반 소리에 이끌려 어디론가 가다가 거문고 음에 끌려 그 자리에 선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 춤을 춘다. 경쾌함과 묵직함이 교차하며 춤사위가 이어지고, 구름 위를 사뿐히 걷는 듯한 모습이 객석을 고요하게 한다. 건반소리는 아주 낮게 넓게 깔리고 거문고는 또렷한 소리를 낸다. 고요함이 이어지다 소리가 멈춤을 끝으로 꿈에서 깬다. 현실. 몽롱하다.

작은별 주제에 의한 변주곡. 별은 동화에 자주 등장한다. 빤짝거림과 지속적으로 비춰지는 빛이 매력이다. 동화 속 이야기를 전개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또박 또박 맑음 속에서 감미로움이 더해지고 사뿐 사뿐 빠른 음을 반복하는 술대. 모처럼 거문고가 무거운 무게를 내려놓고 가볍게 움직였다. 새로움이었다.

그 사람이 나왔다. 판소리. 심청가 완창공연을 봤는데 오늘 여기서 보게 된다. 오늘은 춘향모와 어사또 상봉장면의 춘향가를 갖고 왔다. 소리도 고수도 정겹다. 흥이 나고 금방 몰입한다. 그러나 소리는 좋으나 객석과의 교감이 부족했다. 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해서 추임새에 익숙치 않아 조용했다. 추임새 없음이 미안하다. 객석의 분위기를 미리 예상했다면 ‘사랑가’와 같은 흥겨운 소리로 선곡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추임새를 넣지 못한 객석에서 아주 큰 박수로 마무리를 했다. 공감.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는 익숙하다. 그러나 오늘은 생소하면서도 산조의 다른 멋을 보게되어 크게 기뻤다. 새로움이다. 검은 학이 거문고를 친다. 무리를 지어 부리로 술대를 대신하고 소리를 낸다. 정말 색다른 분위기의 산조다. 여럿이 하는 거문고 산조. 학이 나온다. 검은 학이 춤을 춘다. 鶴舞. 학림이다. 사람과 학이 어우러져 경계없이 춤을 추고 노니는 풍경, 꿈이다. 산조가 이렇게 멋있는 풍경을 연출하다니 색다르다. 흥겨움 속에 또 한 마리 학이 날아들어 합류한다. 산조에서 이렇게 몽환적인 느낌을 받기는 처음이다. 솔향 가득한 송림에 서있는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거문고6중주를 위한 너울새 금소리. 잔잔한 파도소리가 들려오듯이 조용히 시작했다. 먼 곳에서 가깝게 들리는 소리, 차분하다. 술대에 힘이 가해지니 에너지가 흐르고 잔잔함이 더해진다. 반복된 느낌. 조용함. 일렁이는 파도처럼 약간의 변화를 거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이 없으니 흥미롭다. 고요하다. 다시 소리내고 가지런한 모습으로 걷는다. 흥겨움이 가득하다.

악회장의 인사말과 단원들 소개에 객석은 큰 박수로 화답하고 회기로운 분위기. 커튼콜로 ‘출강’은 보너스. 더욱 힘찬 출강. 공연장을 나서는 길, 가볍다. 학은 송림으로 돌아간다.

2010.10.15,저녁 7시 30분
부산거문고악회 제2회 정기연주회, 국립부산국악원 대극장(연악당)